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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일기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오락실은 적어도 국민학생-중학생들에게는 거의 일상의 한 요소가 되었다. 하교길에 산재했던 오락실마다 아이들이 드글거렸고, 하교한 뒤 다시 오락실로 달려온 이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루는 오락실도 종종 있었다. 대략 이 시기에는 절대적인 오락실 수도 증가하면서 일종의 오락실 등급(?)이 나뉘어지던 시대이기도 했다. 도심 핵심번화가를 중심으로 대형 오락실이 등장하기도 했고, 그 오락실에는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오락실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던 희귀 게임들도 찾아볼 수 있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은 이런 오락실로 원정을 가기도 했었다. 이미 게임당 단가는 5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된 시기이기도 했고, 가끔 대형 오락실에서는 200원씩 넣어야 하는 게임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1980년대..
동네마다 오락실이 들어서는 보편화의 시대가 된 1980년대 중반,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길에서 마주치는 오락실만 해도 서너개에 달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의 오락실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많았던 경우가 많았고, 시대의 특성 상 오락실 내부에서 흡연도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부터 오락실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 되었고, 누가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은데 담배를 피는 모습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주 소비층을 의식한 주인들의 단속이 아니었나 싶다.이 시기는 정말 다채로운 게임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던 시절이다. 슈팅게임 위주이던 게임들이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게임의 비주얼 또한 더욱 화려해져 가던 시절이다.가장 먼저 기억나..
1980년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오락실이라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1982년 전후로 해서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던 거 같은데(물론 내가 살던 대구 서구 기준이다.) 이후 정말 동네마다 하나씩 생겨나는 수준은 아니었고, 나름 그 지역의 상가 밀집지역에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던 거 같다. 이 시기 우리집은 그 상가 지역에서 식당을 시작했고, 그 식당이 있던 건물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오락실이 하나 생겼다.학교를 다녀와도 아직 해가 쨍하게 떠있던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TV라는 게 아직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니, 맞벌이 부부의 외동아들이 했던 건 하릴없이 동네 온갖 곳을 쑤시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그러다가 발견한 게 바로 오락실이다. 외..
이제는 광역시 이상급의 도시에도 전통적인 오락실, 그러니까 아케이드 게임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요즘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아케이드 게임장이라는 건 도심에 몇 개 정도 있으면서 주로 댄싱게임, 리듬게임을 즐기는 소수의 이들이나, 지나가다가 인형뽑기나 몇 번 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겠지만, 90년대 후반 정도까지는 아케이드 게임장, 그러니까 오락실은 동네 곳곳마다 존재하는 일상적인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게임들, 그때의 표현으로는 '오락'들은 우리에게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놀라운 기억은, 내가 아케이드 게임이라는 걸 처음 접한 것은 오락실이 아니었다. 화면으로 무언가를 조작하여 게임을 하는 것을 처음 목도한 것은 대략 1979년에서 1981년 사이로 추정..
지금은 그렇게까지 어린이들에게 총애받는 대상은 아닌 거 같은데, 아이들 장난감 중 '요요'라는 것이 있다. 두 개의 원반이 겹쳐진 형태로 원반 사이의 축에 실이 묶여지고 그 실 끝을 손가락에 걸고 튕기면 축에 감겨진 실이 풀리면서 생기는 원심력과 회전력으로 원반이 회전하고, 회전력에 의해 다시 실시 감기는 운동을 반복하게 되는 장난감이다.이 요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6년부터 코카콜라가 요요 콘테스트라는 것을 한다는 광고를 하면서부터이다. 이 시기 코카콜라와 환타, 킨사이다가 판매되는 가게에 동시에 요요가 풀리기 시작했는데, 대략적인 기억으로는 1리터짜리 대용량짜리를 살 땐 증정품으로, 작은 병을 살 때에는 정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돈을 내고 살 수도 있었던 거 같은데..
1986년, 동네 곳곳에 이 포스터가 내걸렸다. 후라이트 나이트라는 이름의 영화.당시는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시리즈가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국내에서도 국민학생인 우리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흥행을 했던터라 그런 맥락으로 우르르 제작되고 우르르 수입된 공포영화였을 터이다.하지만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이 비주얼 때문에 이 포스터를 피해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의 시간에는 이 포스터 위치를 아는 애들은 포스터가 붙은 골목 입구에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부모와 실갱이하는 장면도 있었다.VHS를 방영해주는 분식집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 적도 있었는데, 초반부 처음으로 흡혈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국민학생이 감당하기 벅찬 여성 상체 노출장면이 있어서 깜짝 놀랐던 ..
국민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 담벼락을 따라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다. 번데기나 쥐포, 냉차 등 간식거리를 팔던 곳이 대부분이었는데, 가끔 가다가는 당시 '뽑기'라고 불렀던 일종의 사행성 게임 리어카가 있었다. 게임방식은 1부터 100정도 되는 숫자가 새겨진 판 위에 당첨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적힌 유리막대를 배치한 뒤, 분유통에 빼곡히 박혀있는 숫자가 적힌 종이를 뽑는 규칙.전반적으로 당첨 확률이 그렇게 낮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첨이 되어 받는 거라고 해봤자 설탕으로 만든 누런 엿이어서, 하우스(?) 주인 입장에서는 그닥 손해가 나는 장사는 아니었던 거 같다.가장 큰 당첨상품은 커다란 잉어엿. 국민학생 얼굴 두배 반쯤 되는 크기여서 엄청나게 큰 상품이었는데, 당연히 이게 당첨..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수준은 잘 모르겠고, 국민학생 입장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당분이 부족했던 시절, 주머니에 들어있던 푼돈, 혹은 집안 어느 구석에 쌓여있던 불용자산을 당분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엿장수' 아저씨였다.지금도 이 업종이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만, 아마도 대부분의 엿장수라는 직종은 엿 자체를 판매하는 것보다는 엿장수라는 컨셉으로 다른 물품을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일종의 퍼포먼스 주체의 기능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엿장수는 말 그대로 엿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리어카에 엿판을 얹어서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엿 사시오를 외치면서 주로 아이들에게 엿을 팔았다.이 엿장수 아저씨들은 리어카 위에 올려진 엿판 위에 넓적하게 올려진 엿을 넓적한 가위와 정으로 잘라서 팔았다. 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