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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오락실의 시대 - Part 3. 오락실 보편화의 시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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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오락실의 시대 - Part 3. 오락실 보편화의 시대

반환점 통과자 2026. 5. 28. 09:55

동네마다 오락실이 들어서는 보편화의 시대가 된 1980년대 중반,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길에서 마주치는 오락실만 해도 서너개에 달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실 그 이전까지의 오락실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많았던 경우가 많았고, 시대의 특성 상 오락실 내부에서 흡연도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부터 오락실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 되었고, 누가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은데 담배를 피는 모습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주 소비층을 의식한 주인들의 단속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기는 정말 다채로운 게임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던 시절이다. 슈팅게임 위주이던 게임들이 다양한 장르로 분화되어 나오기 시작했고, 게임의 비주얼 또한 더욱 화려해져 가던 시절이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건 '올림픽'이다. 1984년에 출시된 이 게임은 '하이퍼 스포츠'라는 명칭이 어려웠기도 했지만, 당시 1984년 올림픽이라는 전세계적인 빅 이벤트가 있었기도 했고, 다양한 종목을 플레이하는 특성에 따라 올림픽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게임 인터페이스도 독특해서 조이스틱은 전혀 관여하지 않고 버튼으로만 콘트롤하는 방식으로, 두 개의 버튼의 연타를 통해 속도를 조절하고 나머지 하나의 버튼으로 타이밍에 맞게 기술을 쓰는 방식이었다. 버튼 연타로 속도를 높여야 하니 손톱에 불이나게 버튼을 누르거나 문질러대는 경우가 많았는데, 쇠자나 쇠톱, 혹은 뽑기(가챠)의 둥근 플라스틱을 문질러 빠른 연타속도를 확보하는 노하우들도 많이 사용되었던 인기 게임이다. 사진은 올림픽1 화면인데, 인기가 높았던지 곧이어 올림픽 2가 나오면서 더욱 다양한 종목들을 플레이할 수 있던 게임이 되었다. 아쉬운 건 아무리 잘해도 마지막 종목에서 반드시 끝나게 되는 타임라인이 정해져 있었다는 점.

'쿵푸 마스터' 또는 '스파르탄 X'라는 낮선 제목이 원제인 이 게임은 역시나 당연하게도 '이소룡'으로 불려졌다. 횡스크롤 방식의 진행으로 다가오는 적들을 발차기와 주먹을 무찌르고 층마다 버티고 섰던 층별 보스와 대결하여 넘어선 뒤 윗층으로 올라가는 방식은 이소룡의 마지막 영화인 '사망유희'와 진행방식이 흡사하여 그 제목을 그대로 붙여놓는 오락실도 상당수 있었다. 당시 오락실의 대표적인 히트작 중 하나.

'1942'는 지금까지도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는 비행 슈팅게임의 중시조쯤 되는 게임이다. 전반적인 게임 구조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또는 갤러그와 대동소이하지만, 가상의 배경이 아니라 2차대전의 공중전을 묘사했다는 점이 주 특징으로 기체 1대당 3번까지 허용되는 일종의 필살기 시스템이 최초로 도입된 게임이다. 근데 이 1942에서의 필살기는 사실 적들을 무찌르는 기술이 아니라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적의 총알을 공중으로 회전하여 피하는 일종의 회피기였다. 그 전 슈팅게임들보다 진보한 그래픽과 사운드, 그리고 2차대전이라는 현실적인 배경 등이 인기의 이유였을 것이다.

1984년의 '서커스 찰리'는 당연히 '서커스'라는 제목이 붙었던 게임으로, 주인공이 각종 서커스 종목(?)을 거치면서 낙상하거나 장애물과 부딪히지 않고 돌파하는 게임이다. 점프나 회피 타이밍을 잡는 게임에 취약했던 나는 그리 자주 하진 않았지만 항상 플레이하는 사람이 앉아있던 인기 게임이었다.

1984년 출시된 '봄잭'은 주인공 캐릭터의 모양으로 인해 '아톰'이라는 타이틀로 바뀌어서 불려지기도 하는 게임이다. 팩맨과 유사한 시스템의 이 게임은 동시기의 게임들에 비해 화사해진 반질반질한 그래픽과 공중으로의 점프 후 천천히 하강하는 도중 사이드로 이동하면서 폭탄을 먹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게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소 독특한 게임을 하교길의 오락실에서 하나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초퍼 리프터(Choper Lifter)'이다. 국민학생에게 어려운 영어인데도 별도로 제목이 붙지 않았던 게임인데, 아마도 오락실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에게도 제목 붙이기가 애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헬리콥터를 이륙시켜 총알로 적들을 물리치면서 수용소에 포로로 잡힌 아군을 태워서 복귀해야 하는 방식의 게임이었는데, 포로들을 태우는 와중에도 적들이 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이 공격을 피해가면서 아군을 구출해야 하는 긴박함이 넘쳤던 게임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했던 게임인데 당시 기억으로는 크게 인기를 끈 게임은 아니었다. 출시연도는 1982년인데 오락실에서 플레이한 건 거의 1985년쯤이었다.

'손손'은 1984년 출시된 게임으로, 국민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다. 횡스크롤로 이동하는 화면에서 손오공이 상하로 움직이면서 적을 공격하는 방식인데, 단순하기도 하고 비교적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게임이어서 국민학생들도 쉽게 할 수 있어서 인기가 높지 않았을까 싶다.

'석돌이'는 원제가 '신입사원 토오루'로 1984년에 출시된 게임이다. 이 게임은 당시 국민학생에 나름대로 신선한 느낌을 준 게임인데, 그 이유는 이 게임에서 주인공의 목적이 '땡땡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목적은 가장 뒷자리에서 시작하여 교사, 또는 상사로 보이는 사람을 피해 앞쪽의 문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엉덩이로 밀어내거나, 잡으러 오는 교사/상사를 박치기로 기절시킨 뒤 도망치는 내용이다. 문밖으로 나오면 복도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도망치다가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동일한 패턴으로 클리어해야 하는 방식인데,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며 범생이가 되기를 강조하던 1980년대에 이런 일탈스러운 내용의 게임이라니, 참으로 신선한 내용의 게임이었다.

출시는 1984년이지만 대략 1986년쯤 플레이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닌자키드'의 원제는 '닌자군 마성의 모험'인데, 잘 줄인 제목같다. 붉은색 옷을 입은 닌자가 아래 위로 점프하거나 낙하하면서 아이템을 먹고, 적들을 무찌르면서 스테이지가 진행되는 게임인데, 이 게임이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이유는 매우 찐~한 왜색(矮色)을 띤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일본문화 개방 이전의 시대라서 일본의 분위기를 이렇게 직설적으로 풍기는 콘텐츠가 드물었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같은 맥락으로 1985년에 출시한 '곤베에의 아이엠 쏘리'도 진한 왜색을 드러내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다가오는 적들에게서 도망치는 석돌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 한국 정서에는 매우 낯선 비주얼과 사운드로 가득찬 게임이어서 신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찾아보니 주인공이 부패한 정치인으로 게임의 목적 자체가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옮기는 것으로, 당시 국민학생에게는 그다지 스토리라 와닿지 않았던 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때때로 어떤 오락실에서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나 '이주일'이라고 타이틀을 붙여놓은 경우도 있었다. 주인공이 이주일을 조금 닮기는 했다.

1984년에 나온 '뱅크패닉'은 이 시기 오락실 게임 인터페이스의 다양화를 잘 보여주는 게임이다. '은행강도'라틑 매직펜 타이틀이 붙었던 이 게임은 은행 창구 뒤에서 은행을 털러 쳐들어오는 강도를 총으로 쏴서 잡는 게임인데, 세 개의 문에서 강도와 일반 손님들이 랜덤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판단력과 강도가 총을 쏘기 전에 먼저 쏴야 하는 타이밍이 핵심인 게임이었다. 잘못 판단해서 손님을 쏘게 되면 맞은 손님이 신경질을 버럭버럭 내서 민망하게 만들었던 것이 묘미.

1985년에 나온 '시티 커넥션'은 아래위 3개로 나뉘어진 난간, 혹은 철근 위로 주인공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그 난간, 혹은 철근을 하얗게 칠해야 스테이지가 클리어되는 게임이다. 이 게임이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게임 그 자체보다는 게임의 배경이나 전반적인 디자인의 느낌, BGM이 동시기의 다른 게임들보다 굉장히 스타일리쉬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학생이던 내게도 게임 자체를 쉽지도 않고 잘해봐야 그닥 재미도 없는 게임이었는데, 뭔가 굉장히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주었던 게임이다. 지금와서 돌이켜 이 게임의 분위기에 적절한 용어는 '시티팝'이다. 유튜브에서 플레이하는 영상을 직접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지금와서 출시연도를 찾아보니 알게된 내용이어서 다소 견강부회스러운 면이 있지만, 내 기준으로 당시 오락실 시대의 절정을 느꼈던 게임들이 우르르 쏟아진 것이 1985년인 거 같다. 원제가 'ASO'인 '아쏘' 역시 1985년에 나온 게임으로,  게임 진행방식은 제비우스와 같이 기존의 횡스크롤 슈팅 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진행 과정 중에서 계속 등장하는 아이템으로 인해 주인공 기체와 무기체계를 계속 변화, 또는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인 게임이었고, 이 특징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다. 어깨 너머로 본 고수들의 플레이는 각 스테이지마다 등장하는 보스 몹들의 특성에 맞춰서 적절한 아이템으로 주인공 기체를 준비시켰던 것이 인상깊게 기억되고 있다.

'그린베레' 역시 1985년에 출시된 게임인데, 이 게임도 오락실에 가면 언제나 플레이하는 사람이 있었던 인기 게임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횡스크롤 형태로 진행되는 사람이 주인공인 첫 게임인데, 그린베레의 특수 부대원이 다가오는 적들을 물리치는 방식보다는 게임 전체에 깔려있는 무언가 서늘한 느낌이 강렬하게 느껴졌던 게임이다. 전반적으로 톤다운된 컬러들과 사이렌 소리와 북 소리 등으로 구성된 BGM은 냉전 시절 적진에 홀로 쳐들어간 특수요원의 느낌을 직관적으로 전달해주는 느낌이었다.

동 연도에 출시된 '너클죠' 역시 그린베레와 같은 결의 독특한 느낌을 주던 게임이다. 횡스크롤 게임은 아니고 일정한 공간 내에서 등장하는 몸들과 스테이지별 보스를 주먹과 발차기로 상대해야 하는 이 게임의 배경은 슬럼화된 뒷골목 내지는 황폐해진 도시 공간 등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용어 자체나 느낌을 알게 된 표현이긴 하지만 굉장히 '세기말적인', 혹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을 주는 게임이었다.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80년대 중반을 지나치면서 슬슬 세기말이라는 개념, 혹은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이 등장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건스모크' 역시 출시연도는 1985년. 종스크롤로 진행되는 이 게임의 배경은 서부시대로 다가오는 몹들과 스테이지별 보스를 총알로 해치우는 방식인데, 인터페이스 측면에서 세 개의 버튼이 각기 정면과 11시, 1시 방향으로 발사각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때로는 정면의 지상만이 아니라 측면의 건물 2층의 창문에서도 출현하는 적을 해치워야 하고, 나무 물통을 박살내면 각종 아이템이 등장하는 방식도 인상깊게 남아있다.

'매트 매니아'는 1985년에 출시된 프로레슬링 게임인데, 내가 최초로 해 본 프로레슬링 게임이었고, 거의 유일하게 원코인으로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갈 수 있었던 게임이다. 전반적으로 그렇게 인기있는 게임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게임 파훼법을 익히게 되어 내게는 즐겨찾기와 같이 매번 오락실에 갈 때마다 했던 게임이기도 하다. 주먹과 발차기의 타격기와 더불어 적과 그래플링 상태로 접어들면 조이스틱와 버튼의 조합으로 각종 프로레슬링 기술을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지금 기준으로도 진행 인터페이스가 꽤 수준이 높았던 게, 조이스틱과 버튼으로 조합으로 파워슬램, 브레인버스터에서부터 로프 반동에 이은 크로스라인이나 크로스바디,  파일드라이버, 그리고 링 코너에 올라간 뒤 점프하여 공격하는 기술 등 무수한 커맨드가 가능했던 게임이다. 거기에 링 안에서뿐만 아니라 심판이 20 카운트를 외치는 동안 링 밖에서도 대결을 벌일 수가 있는 등 프로레슬링의 기술과 규칙을 그대로 반영한 우수한 게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원코인으로 마지막까지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고 3번째 스테이지의 호피 코스튬을 입은 흑인 레슬러(나중에 찾은 이름은 '코코 새비지')를 꺽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5번째의 마지막 보스는 그야말로 강력했는데, 이 보스를 꺾은 경험은 손에 꼽는다. 마지막 보스를 돌파하면 다시 첫 스테이지의 보스로 무한루프되는 방식인데, 다시 만난 첫 스테이지 보스는 처음 만난 그와 수준이 달라서 한바퀴를 돌았더라도 여기서 대부분 끝장이 났었다.

'마계촌'은 아마도 1985년에 출시된 게임 중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게임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악마, 혹은 흡혈귀에게 연인을 빼앗긴 기사가 횡스크롤로 진행하면서 등장하는 좀비와 괴물들, 그리고 스테이지별 보스를 격파해가면서 연인을 되찾으러 간다는 내용인데, 사실 게임의 그래픽이나 음산한 BGM과 효과음, 아이템에 의해 교체되는 무기 등 게임 자체의 퀄리티가 매우 높은 게임이어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나는 이 게임을 첫 스테이지 보스도 못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지켜보기만 많이 했던 게임이기도 하다. 묘지의 비석을 무기로 계속 때리면 아이템이나 숨겨진 적이 나타나는 것도 독특했던 게임.

1985년의 '사무라이 니혼이치' 는 당연하게 국민학생들이 알아먹을 수 있는 범위의 '사무라이'까지만 표기했던 게임인데, 사실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게임은 아니다. 다소 뒤떨어지는 그래픽과 단순한 횡스크롤로 다가오는 적들과의 대결 등 동시기의 게임들보다 현저하게 게임성이 떨어지는 게임인데,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이유는 역시나 이 게임은 대놓고 일본 콘텐츠라고 드러내는 게임이라는 희소성 때문이다. BGM 역시 전형적인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클리셰의 음악이었다. 사미센이었나...

'이얼쿵후' 역시 1985년작으로, '쿵후'로 표시되던 게임이다. 이 게임 역시 게임 자체의 인기보다는 게임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인상깊게 남아있는데, 이건 왜색이 아니라 중화풍이 진하게 느껴졌던 게임이다. 물론 우리에게 홍콩이라는 존재가 있긴 했지만, 이 게임의 배경은 홍콩보다는 중국에 가까웠다. 주인공의 대사들도 간단하지만 중국어로 더빙되어 있었고, 적과 대결하는 배경 또한 중국 본토의 유려한 자연이나 절 등이 대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을 즐겨했었는데, 그 때문에 이 게임이 인기가 없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적과 대결 시 사용하는 기술들은 당연히 조이스틱과 버튼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방식인데, 의외로 이게 가짓수가 많고 입력이 그다지 직관적이지는 않아서 조이스틱과 버튼을 마구 돌리고 누르다가 뽀록으로 승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 기술로 이겼다는 성취감이 그닥 없는 게임이었다.

반면에 동년에 나온 '소림사'는 역시 중화풍의 그래픽과 BGM을 보여주던 게임인데, 이얼쿵후에 비해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허약한 다수의 몹과 적당히 강한 몹 등이 섞여 있으면서 경쾌한 느낌도 주는 게임이어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다. 게임 난이도도 적당히 쉬운 편이어서 많은 아이들이 즐겨 플레이했었다.

역시 1985년에 출시된 '코만도'는 '전장의 이리'라는 원제를 가진 종스크롤 슈팅게임으로, 다가오는 적들을 단신으로 돌격하는 특수부대원이 총알과 수류탄으로 해치우는 게임이다. 그래픽이나 게임 방식이 동시기에 나온 '건스모크'와 유사한 느낌을 주었던 게임으로, 당시 극장에서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아놀드 슈왈츠네거 주연의 '코만도'라는 영화가 오락실 주인의 작명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동 시기에 오락실에 등장한 '청춘스캔들'은 '마이 히어로'라는 원제를 가진 횡스크롤 게임으로, 앞서 소개한 '시티 커넥션'과 같이 80년대 일본의 '시티팝'스러운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했던 게임이다. 밝고 경쾌한 느낌의 그래픽과 BGM, 그리고 진지하긴 하지만 어둡지는 않은 전반적인 분위기 등이 인상깊었던 게임이지만, 당시 국민학생들에게 그렇게 높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행온'은 내가 처음으로 오락실에서 목격한 바이크 운전 게임이다. 오락실에 따라 '향원'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놓은 경우도 있었다. 조이스틱이 아니라 실제 오토바이처럼 핸들과 브레이크, 그리고 실제 오토바이를 타듯이 연료통과 안장까지 갖추고 있어서 당시 기준으로는 나름대로 현실감을 주었던 게임이다.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도로에서 종종 오토바이를 타는 형들, 강력한 심증으로는 아직 면허도 없는 고등학생 형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 게임 역시 우리 국민학생들보다는 그런 형들이 자주 플레이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슛아웃'은 나는 즐겨하던 게임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었던 게임으로 기억한다. 인기가 그리 없었으니 별도의 타이틀이 붙었는지 아닌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이 게임이 있던 오락실도 소수에 불과했다. 60~70년대의 탐정물 내지 형사물 느낌을 강력하게 주던 게임으로, 주인공은 횡으로 움직이지만, 적들은 정면에서 나타나고 이들을 총으로 해치워야 하는 게임이었는데, 벽이나 장애물 뒤에 숨거나 점프로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총으로 특정 오브젝트를 맞추면 아이템이 나오는 등 다채로운 요소가 들어있는 게임이었다. 나중에 등장하는 인기게임 '카발'의 원조가 이 게임이 아니었나 강력하게 추정된다.

1985년 출시된 마지막 기억의 게임은 '여삼사랑'이다. 일본어로 '여자 산시로'라고 해석될 수 있는데, 당시 국민학생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도 없었고, 심지어 오락실 주인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찾아보니 '산시로'라는 건 전설 속의 유도 선수를 칭하는 이름이고 거기에 女자를 붙여놓은 제목이니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알 수가 없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오락실 주인이 써갈긴 제목은 '여자 유도', '유도' 등이 한계. 스테이지마다 등장하는 상대와 유도로 대결한 뒤 가운데 앉아있던 보스와 대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난이도가 그리 쉽지는 않아서 힘들었던 게임이다. 커맨드 입력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조이스틱과 버튼을 대충 아무렇게나 돌리고 누르다 보면 이기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하지는 않았던 게임인데, 역시나 풍겨대던 일본 분위기로 인해 인상깊게 남아있는 게임이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오락실은 이제 더이상 낯설고 신기한 것이 아닌 일상에 존재하는 문화적 요소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방과 후 하교길에 자연스럽게 들리는 학생들의 집합소가 되었고, 이전 시기까지는 오락실에 있다가 엄마에게 귀때기를 붙잡혀 끌려가던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이런 경우가 점점 줄어들었던 기억으로 따지면 오락실과 게임이 아이들의 일상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하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경제학적으로 따지면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한국의 경제성장과 가계소득 증가에 따라 아이들이 얼마간 오락실에서 소비할 수 있는 여유 현금이 발생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