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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2026/05/26 (4)
퇴행일기
1986년, 동네 곳곳에 이 포스터가 내걸렸다. 후라이트 나이트라는 이름의 영화.당시는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시리즈가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국내에서도 국민학생인 우리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흥행을 했던터라 그런 맥락으로 우르르 제작되고 우르르 수입된 공포영화였을 터이다.하지만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이 비주얼 때문에 이 포스터를 피해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의 시간에는 이 포스터 위치를 아는 애들은 포스터가 붙은 골목 입구에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부모와 실갱이하는 장면도 있었다.VHS를 방영해주는 분식집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 적도 있었는데, 초반부 처음으로 흡혈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국민학생이 감당하기 벅찬 여성 상체 노출장면이 있어서 깜짝 놀랐던 ..
국민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 담벼락을 따라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다. 번데기나 쥐포, 냉차 등 간식거리를 팔던 곳이 대부분이었는데, 가끔 가다가는 당시 '뽑기'라고 불렀던 일종의 사행성 게임 리어카가 있었다. 게임방식은 1부터 100정도 되는 숫자가 새겨진 판 위에 당첨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적힌 유리막대를 배치한 뒤, 분유통에 빼곡히 박혀있는 숫자가 적힌 종이를 뽑는 규칙.전반적으로 당첨 확률이 그렇게 낮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첨이 되어 받는 거라고 해봤자 설탕으로 만든 누런 엿이어서, 하우스(?) 주인 입장에서는 그닥 손해가 나는 장사는 아니었던 거 같다.가장 큰 당첨상품은 커다란 잉어엿. 국민학생 얼굴 두배 반쯤 되는 크기여서 엄청나게 큰 상품이었는데, 당연히 이게 당첨..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수준은 잘 모르겠고, 국민학생 입장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당분이 부족했던 시절, 주머니에 들어있던 푼돈, 혹은 집안 어느 구석에 쌓여있던 불용자산을 당분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엿장수' 아저씨였다.지금도 이 업종이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만, 아마도 대부분의 엿장수라는 직종은 엿 자체를 판매하는 것보다는 엿장수라는 컨셉으로 다른 물품을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일종의 퍼포먼스 주체의 기능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엿장수는 말 그대로 엿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리어카에 엿판을 얹어서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엿 사시오를 외치면서 주로 아이들에게 엿을 팔았다.이 엿장수 아저씨들은 리어카 위에 올려진 엿판 위에 넓적하게 올려진 엿을 넓적한 가위와 정으로 잘라서 팔았다. 넓..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대략 6세에서 7세 정도의 시기, 연도로 따지면 1980년에서 1981년 사이의 시기에 나는 어린 백수 그 자체였다. 6살 때 유치원에 1년 다니기는 했지만 7살 때에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고, 때마침 그 시기 엄마는 나를 집에 두고 어디에 다니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때 엄마는 식당 창업을 준비하느라 요리학원에 다니셨다고 한다.여하튼 아침밥을 먹고난 뒤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도 어디에 나간 뒤 저녁 시간때까지 나는 거의 하루종일을 혼자서 지내야 했는데, 그나마 든든했던 건 엄마가 매일마다 주던 백원짜리 하나였다. 당시에 백원이면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엔 내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사탕 하나가 십원 할 때였으니 백원이면 사탕 하나 사먹고, 동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