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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일기
멀티플렉스라는 용어도 이젠 세월에 밀려 그 용어의 신선함이 퇴색한 느낌이다.TV와 VHS라는 강력한 도전자들에게도 꿋꿋이 살아남던 극장이 이제는 엔터테인먼트의 후순위로 밀려나 있으니,백년 가까이 영상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왕좌를 지키던 주인공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지나간 단관 극장들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대구지역 단관 극장들의 탑티어는 단연코 한일극장이었다. 한일극장이 대구의 대표적인 단관 극장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일극장의 위치는 동성로 남측 길의 진입구 코너에 위치하고 있고, 이 위치는 동성로 북측 길에서부터 남쪽으로 뻗어내려오는 형태로 발전한 동성로 상권 성장의 중심축에 있었다. 대중교통이 교통의 핵심이던 시절 한일극장은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대구백화점쪽으로 이동하..
어깨동무와 새소년, 소년일보와 클로버문고를 거쳐 내 안에서 발아(?한 만화책에 대한 욕구는 보물섬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게 되는데, 이놈의 만화책들의 한계는 그 파편성에 있었다. 새소년과 소년일보들은 연재형태라 끊입없이 기다려서 봐야 하는 감질나는 것들이었고, 매번 살 수도 없던 것들이었다. 양적으로 엄청났던 보물섬도 당시 국민학생 기준으로는 가격도 엄청난 수준이어서 가뭄에 콩나듯이 엄마의 인심에 따라 샀던 것도 한 두권 수준. 클로버문고도 친구집, 친척집에서 파편적으로 발굴(?)할 수 있었지 전집을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그러던 중 이윽고 나는 동네 골목 구석에서 '만화방'이라는 걸 찾아내고 만다.80년대 초반에 찾아낸 만화방은 지금 생각해보면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오래된 노포의 시설에 나무도 된 책..
어깨동무와 새소년, 그리고 소년 일간지 등으로 한창 만화들을 접했던 시기,나는 이런저런 곳을 다니며 조금은 신기한 책들을 파편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 책들은 바로 클로버문고.이 '클로버문고'라는 걸 처음 접한 것은 가끔 방문하던 사촌형의 집에서였다. 그 집의 어느 구석에 돌아다니던 '갈기없는 검은사자'라는 만화책. 조금은 독특했던 것이 당시 다른 만화책들이 조금은 열악한 제본상태와 인쇄용지로 구성되어 너덜너덜한 분위기를 풍겼다면, 이 책은 무언가 만화책같지 않은, 세계명작동화스러운 형태를 지녔었다.이 '갈기없는 검은사자'를 시작으로 나는 친구네 집, 동네의 어느 이발소 구석, 학교의 학급문고 등에서 말 그대로 파편적으로 이 책들을 만나게 된다. '갈기없는 검은사자'의 표지에서 보이는 '235'라는 넘버링..
어깨동무와 새소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보물섬은 월간잡지 형태의 인쇄물이었다면, 다른 한 켠에는 매일같이 받아보았던, 혹은 받아보아야 했던 어린이 신문이 있었다.기억상으로는 소년조선일보와 소년동아일보, 그리고 소년한국일보 3종류가 있었는데,당시에 대한 기억으로는 담임선생님의 '매우' 강력한 구독 권고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아마도 이 구독에 대한 어떤 실적 강요가 있었지 않았나를 어른이 된 시점으로 짐작하게 된다.명색이 신문인지라 대부분의 콘텐츠는 국민학교와 국민학생, 그리고 어린이 관련 각종 기사가 중심인 그야말로 신문이었다. 당연히 다이나믹한 무슨 이슈가 게재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마다 받아보는 신문에는 '바른생활스러운' 기사만 줄줄 나오니 일부러 돈을 내가며 이걸 받아볼 의욕이 샘솟았던 대상은 ..
지금은 아이들의 엔터테인먼트가 전자기기를 기반으로 한 영상물과 게임에 몰빵이 되어 있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텍스트와 이미지 기반의 매체가 거의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물론 매체 자체의 파워는 영상물이 더 강력하긴 했다. 아마도 그 강력함은 영상물의 콘텐츠 품질보다는 매체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반복적인 접촉을 할 수 없다는 특징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당장 너 만화영화 볼래 만화책 볼래라고 물으면 당연히 만화영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VHS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만화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냥 스트리밍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돌려보는 것도 안되고 나중에 보는 것도 안되는 환경에서 집중도가 남다를 수 밖에. 만화책을 포함한 출판물의 경우는 덮어 두었다가 나..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본 것이 1981년 정도인데, 사실 그 때는 국민학교 입학 전이었던 시기였고, 정작 1982년 국민학교 입학을 한 이후로 한동안은 극장에 가보지를 못했던 것 같다. 그 시기 부모님은 식당을 개업하셔서 엄청나게 바쁘고 고생을 하셨던 시기여서, 그 이전 아버지가 직장에 출근하고 엄마가 전업주부였던 시기보다 시간적 여유는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인 거 같다. 사실 극장에 가는 건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집착할 정도로 욕구가 컸던 건 아니었던 거 같다. 지금도 영화 관람료가 비싸니 어떠니 말이 있지만, 그 시절엔 더더욱 비싸게 느껴졌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건 어린이인 나뿐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1년에 겨우 한 두번이 다였던 시절이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꽤나 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고, 지금 시절도 별반 다를바가 없겠지만, 국민학생이던 어린 시절 집착적으로 환호했던 콘텐츠 1순위는 영상물이었다. 분식집 비디오도 그렇지만, 명절 때마다 TV에 특별하게 방영되던 각종 특집 만화영화나 특선영화들은 신문에서 방영시간표를 오려서 외우고 다닐만큼 집착했었다. 사실 지금이나 그때나 영상물이라는 건 가장 최고의, 최선의 엔터테인먼트 수단이니까..지금이야 OTT 서비스 때문에 한물 간 느낌이 있지만, 적어도 그 당시 그러한 영상물의 끝판왕은 단연 극장 상영 영화였다. 80년대 TV래봤자 14인치의 작은 화면의, 그것도 상당수 가정은 여전히 흑백TV에다가 UHF 수신기능도 없어 KBS2 채널은 보지도 못하는 TV도 많았던 시절이다.(이 말 자체를 요즘에는 아예 무슨 소리인지 모..
10살 전후로 하여 분식집 VHS를 통해 입덕을 시작한 나는 앞서 말했다시피 매일같이 분식집에서 보는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어려가지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우선, 이 '만화영화'들은 모두가 다 주인공이 한국인이라고 하고 배경도 한국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이것들을 '테리비'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인가? 내가 아무리 어려도 비디오라는 기계는 스트리밍(그 때는 이런 용어도 없었다만)되는 영상을 언제건 다시 볼 수 있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인데, 그렇다는 것은 이건 언젠가 '테레비'에서 스트리밍 되었다는 뜻 아닌가? 왜 난 본 적이 없지? 옛날 거라서 그런 건가? 근데 주변의 동네 형한테 물어봐도 그런 만화를 본 적이 없단다.(물론 그 형은 분식집 죽돌이가 아니었으니...)혹시... 이건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