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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일기
소년 조선/동아/한국일보 본문
어깨동무와 새소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보물섬은 월간잡지 형태의 인쇄물이었다면,
다른 한 켠에는 매일같이 받아보았던, 혹은 받아보아야 했던 어린이 신문이 있었다.
기억상으로는 소년조선일보와 소년동아일보, 그리고 소년한국일보 3종류가 있었는데,
당시에 대한 기억으로는 담임선생님의 '매우' 강력한 구독 권고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이 구독에 대한 어떤 실적 강요가 있었지 않았나를 어른이 된 시점으로 짐작하게 된다.

명색이 신문인지라 대부분의 콘텐츠는 국민학교와 국민학생, 그리고 어린이 관련 각종 기사가 중심인 그야말로 신문이었다. 당연히 다이나믹한 무슨 이슈가 게재되는 것도 아니고, 매일마다 받아보는 신문에는 '바른생활스러운' 기사만 줄줄 나오니 일부러 돈을 내가며 이걸 받아볼 의욕이 샘솟았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신문들을 몇차례 구독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아마도 나를 통해서인지, 무슨 통지서를 통해서인지 부모님에게 이 신문구독을 강력하게 권장하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닥 구독할 의욕이 넘치는 대상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소년신문들은 대략 소년조선일보와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의 3종이 경쟁을 벌였던 걸로 기억한다. 선택은 각 학생들의 취향대로였고 매월마다 구독하는 신문을 변경할 수도 있었다. 어른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매월 말 즈음에 신문구독 의향을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그 때 선생님 저는 소년동아일보에서 소년한국일보로 바꿀래요...같은 신청을 접수했을 것이다. 기억하건데 월 구독료는 대충 1000원 남짓했던 것 같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이 500원 정도, 일반 일간지 1부가 100원 하던 시절인데, 소년신문들은 면수가 적어 이게 싼 건지 비싼건지 애매한 수준이었다. 주6일 수업이니 한 달 구독부수는 25~26부 정도. 따지면 부당 40원 정도인데 뭐 당시 일간지 가격과 비교하면 리저너블 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와서 관련 정보들을 주욱 살펴보니, 이 어린이 신문들을 구독하게 되면 학교, 즉 교사가 해당 신문사로부터 기부금 명목의 사례를 받았다고 한다. 일종의 페이백이었던 셈이다. 한 학급이 65명 정도이던 시절, 내 기억으로 이 신문을 받아보는 이들이 대략 7~8명 정도였는데, 계산하면 한 달에 7~8천원 정도의 구독료가 모였을 것이고, 이걸 연간으로 치면 방학기간을 빼면 거진 학급당 6~7만원 정도의 비용이 신문사로 전달되었을 거 같다. 그렇다면 거기서 페이백을 최대 20% 정도 수준으로 잡는다면 학급당 페이백 금액은 1~1.5만원 수준. 당시 물가 기준으로는 짜장면 30그룻, 지금으로 따지면 21만원 정도 되는 금액으로 짐작된다.
뭐 페이백 비율은 그냥 현재 어른인 내 감각이니 별 객관성은 없는데, 지금 기준으로 1년에 20만원 정도의 가외수입을 노리고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했을까? 잘 모르겠다.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당시 교사들의 급여 수준은 박봉 그 자체였고, 저개발국가의 특성 상 이런 종류의 가외수입으로 그 박봉을 메꾸는 시스템이 여러가지로 존재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기준으로는 범죄에 가까운 이러한 행위 또는 시스템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 학급별 담임이 아니라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기준으로는 전교 통틀어 100학급에 육박하던 시절이니(한 학년에 13~14반까지, 거기에다가 오전, 오후반이 있었다.) 학교 전체에 대한 페이백 개념으로 따지면 연간 2천만원에 육박하는 무시못하는 금액이긴 하다. 당시 번듯한 반양옥 주택 1채 가격이 대략 500만원 전후였다.
뭐, 신문구독의 강요에 따른 어른의 사정은 접어두자. 입맛이 다소 쓰긴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지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이 어린이 신문들을 구독할 일말의 의욕이 생기는 요소가 그래도 존재했는데, 그건 역시 매일 연재되는 만화들이었다. 지나고보니 참으로 기라성같은 당대의 한국 만화가들(이상무, 고유성, 윤승운, 김삼, 길창덕, 신문수 등)이 대부분 이 소년 일간지에 만화들을 연재했었고, 솔직히 적어도 나는 이 만화들을 보기 위해 신문들을 구독했었다. 그리고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일간지들을 받아보았는데 각기 연재되는 만화가 다르다보니 서로 바꿔가며 보거나, 저쪽 일간지의 만화들이 더 낫다고 판단이 되면 기변(?)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생각해보면 저 일간지들은 하나마나한 기사가 40% 정도, 연재만화가 30% 정도, 나머지 30% 정도는 모조리 다 광고였다. 티티파스, 모나미, 티티 하이샤파 연필깍이 등 문구류부터 과자, 음료수 등등의 광고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어른의 시각에서 보면 구독료는 구독료대로 받아, 광고는 광고비 받아서 광고대로 해...참 괜찮은 비즈니스였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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