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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일기
1986년, 동네 곳곳에 이 포스터가 내걸렸다. 후라이트 나이트라는 이름의 영화.당시는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시리즈가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국내에서도 국민학생인 우리에게도 알려질 정도로 흥행을 했던터라 그런 맥락으로 우르르 제작되고 우르르 수입된 공포영화였을 터이다.하지만 다른 영화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이 비주얼 때문에 이 포스터를 피해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의 시간에는 이 포스터 위치를 아는 애들은 포스터가 붙은 골목 입구에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부모와 실갱이하는 장면도 있었다.VHS를 방영해주는 분식집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 적도 있었는데, 초반부 처음으로 흡혈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국민학생이 감당하기 벅찬 여성 상체 노출장면이 있어서 깜짝 놀랐던 ..
국민학교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 담벼락을 따라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다. 번데기나 쥐포, 냉차 등 간식거리를 팔던 곳이 대부분이었는데, 가끔 가다가는 당시 '뽑기'라고 불렀던 일종의 사행성 게임 리어카가 있었다. 게임방식은 1부터 100정도 되는 숫자가 새겨진 판 위에 당첨될 경우 받을 수 있는 상품이 적힌 유리막대를 배치한 뒤, 분유통에 빼곡히 박혀있는 숫자가 적힌 종이를 뽑는 규칙.전반적으로 당첨 확률이 그렇게 낮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첨이 되어 받는 거라고 해봤자 설탕으로 만든 누런 엿이어서, 하우스(?) 주인 입장에서는 그닥 손해가 나는 장사는 아니었던 거 같다.가장 큰 당첨상품은 커다란 잉어엿. 국민학생 얼굴 두배 반쯤 되는 크기여서 엄청나게 큰 상품이었는데, 당연히 이게 당첨..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수준은 잘 모르겠고, 국민학생 입장에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당분이 부족했던 시절, 주머니에 들어있던 푼돈, 혹은 집안 어느 구석에 쌓여있던 불용자산을 당분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엿장수' 아저씨였다.지금도 이 업종이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만, 아마도 대부분의 엿장수라는 직종은 엿 자체를 판매하는 것보다는 엿장수라는 컨셉으로 다른 물품을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일종의 퍼포먼스 주체의 기능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엿장수는 말 그대로 엿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리어카에 엿판을 얹어서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엿 사시오를 외치면서 주로 아이들에게 엿을 팔았다.이 엿장수 아저씨들은 리어카 위에 올려진 엿판 위에 넓적하게 올려진 엿을 넓적한 가위와 정으로 잘라서 팔았다. 넓..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대략 6세에서 7세 정도의 시기, 연도로 따지면 1980년에서 1981년 사이의 시기에 나는 어린 백수 그 자체였다. 6살 때 유치원에 1년 다니기는 했지만 7살 때에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고, 때마침 그 시기 엄마는 나를 집에 두고 어디에 다니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때 엄마는 식당 창업을 준비하느라 요리학원에 다니셨다고 한다.여하튼 아침밥을 먹고난 뒤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도 어디에 나간 뒤 저녁 시간때까지 나는 거의 하루종일을 혼자서 지내야 했는데, 그나마 든든했던 건 엄마가 매일마다 주던 백원짜리 하나였다. 당시에 백원이면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엔 내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사탕 하나가 십원 할 때였으니 백원이면 사탕 하나 사먹고, 동네 문..
AFKN이라는 게 있었다. 한 때 존재했던 공중파 TV채널과 방송국의 명칭이다.이걸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올 줄은, 아니 사실 설명할 수 있는 나이가 될 줄은 몰랐다.^^AFKN은 American Forces Korean Network의 준말이다. 한글로 번역하면 '주한미군방송'쯤 되겠다.이게 왜 있어야 했는지는 무슨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거 같다.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은 주둔 역사에 걸쳐 최대 6만명까지 늘어났었고, 현재는 대략 28,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미군 숫자만 3만명이라고 본다면 기혼자에 따른 배우자 및 자녀까지 더하면 약 5만 명의 미국 국적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뭐 지금이야 그들에게 별도의 미디어가 제공될 필요가 없을 것이지만, 이게 대략 90년..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중파 TV에 방영되는 해외 드라마는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여러 미드들이 대박을 쳤으니 당연한 일일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90년대는 나에게 공중파 미드들의 마지막 시대였다. 80년대부터 점점 보급이 확대되던 VHS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디오를 빌려서 볼 수 있는 비디오 대여점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중파는 강력한 미디어 파워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스트리밍 환경에 의한 본방 사수가 아니라 언제건 빌려서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시대가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90년대 초중반까지는 공중파 TV와 거기서 방영되는 주옥같은 해외산 드라마들이 있었는데, 가장 먼저..
주말에 방영하는 단편 영화 말고도 TV를 지배하던 또하나의 한 축은 바로 '미드'들이었다.사실 이 '미국드라마'를 줄인 '미드'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긴 하지만 이걸 카테고리화해서 지칭할 용어가 따로 없다.내 기준으로 80년대 미드는 크게 두 시기로 나뉘어진다. 구분 기준은 80년대 중반. 8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미드들은 개인적으로는 so-so의 느낌이었다. 물론 이건 그 때 내가 절대적인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기도 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시기까지의 미드들은 개별적으로 볼 기회가 있으면 재미있게 봤지만 본방사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수준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가장 먼저 기억에 떠오르는 건 '기동순찰대'. 경찰 바이크를 모는 두 명의 기동순찰대 요원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
단관 극장의 추억 어쩌구 얘기를 했지만, 사실 80년대까지 극장에 방문하여 개봉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비일상적인 일이었다.주로 극장을 갈 수 있었던 시기는 설날과 추석의 양대 명절 시즌이었고, 설날의 경우에는 얼마씩 받을 수 있었던 새뱃돈으로, 추석의 경우에는 모인 친척들이 단체로 몰려가는 식이었다. 대충 가족 단위나 친구들끼리 만나서 극장을 가는 것이 일상화되던 건 거진 80년대 후반이 되어서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그건 대충 그 시기에 전반적인 경제적 형편이 조금씩 풀려서일테고, 90년대 초반쯤에는 내가 청소년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또래들끼리 극장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희미해졌기 때문일테다.그 전까지 영화라는 매체를 일상적으로 접했던 경로는 당연 TV였다. 그 중에서 단연 일상적인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