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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일기

다이나믹 콩콩 미니백과와 건담월드 입문

반환점 통과자 2026. 5. 7. 11:38

10살 전후로 하여 분식집 VHS를 통해 입덕을 시작한 나는 앞서 말했다시피 매일같이 분식집에서 보는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어려가지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우선, 이 '만화영화'들은 모두가 다 주인공이 한국인이라고 하고 배경도 한국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도대체 왜 우리는 이것들을 '테리비'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인가? 내가 아무리 어려도 비디오라는 기계는 스트리밍(그 때는 이런 용어도 없었다만)되는 영상을 언제건 다시 볼 수 있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인데, 그렇다는 것은 이건 언젠가 '테레비'에서 스트리밍 되었다는 뜻 아닌가? 왜 난 본 적이 없지? 옛날 거라서 그런 건가? 근데 주변의 동네 형한테 물어봐도 그런 만화를 본 적이 없단다.(물론 그 형은 분식집 죽돌이가 아니었으니...)

혹시... 이건 우리나라 만화가 아니라 다른 나라 만화영화인 거 아닐까? 그렇다면 일본밖에 없는데?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다 동양인인 거 같은데, 중국은 사실상 교류가 안되는 중공인데??? 

그러던 차에 이 의문에 더 의문을 자아내는 아이템이 등장했으니, 그것이 바로 아카데미과학사에서 나온 '기동전사 칸담 로보트' 프라모델이다. 사실 프라모델이라는 용어도 없었다. 우리는 이걸 '조립식'이라고 불렀다. 

이 '칸담'은 이래저래 의문 투성이인 아이템이었다. 일단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본 바 정확한 발음은 칸담이 아니라 '건담'이었다. 영어로 버젓이 스펠링이 적혀 있는데 뭔 생각으로 된소리로 번역을 해놨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칸담이 건담보다 더 애들에게 임팩트가 있다고 여겨서 작명한 것이리라. 여하튼 이 건담은 당췌 알 수가 없는 대상이었다. 분식집 비디오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이게 상영되는 일은 없었고, 아줌마한테 물어봐도 그게 뭐여?의 대답이 다였던 이 만화영화의 주인공 기체 프라모델은 전반적인 모양새나 문방구에 풀리는 양을 봤을 때 유명하기는 유명한 거 같은데, 당췌 그 흔적을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걸 조립하기 위해 동봉되어 있는 설명서나 박스 옆면에 짧게짧게 적혀진 설정의 파편들은 아무래도 이게 보통 만화영화가 아닌 거 같다라는 느낌을 강력하게 주었다. 그러던차에...

 

대략 1985~6년 사이 국민학교 앞 문방구에는 이러한 책들이 갑자기 풀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출판사가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라는 곳으로 적혀 있던 이 어른 손바닥만한 책들은 이제 막 입덕의 경지에 접어들은 내게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템들이었다. 다른 출판사들도 동일한 판형으로 유사한 형태의 책들을 만들어냈지만, 어린이의 눈으로도 이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혹은 다이나믹 프로)에서 나오는 책들의 때깔이 훨씬 좋았다. 일단 컬러로 인쇄한 페이지의 양, 그리고 편집의 깔끔함 등등...

이 미니대백과들을 보면서 우선적인 소득은 전체 스토리가 텍스트로나마 다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회차별로 짧지만 스토리가 다이제스트가 되어 있어서 전반적인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게 또 이전까지 봐왔던 슈퍼로봇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매 회마다 똑같은 패턴으로 적들이 쳐들어오고, 주인공이 주역 메카로 출격하여 고생 좀 하다가 필살기로 극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등장인물도 다양하고 그들 성격도 다 제각각이고 배경이 되는 장소도 계속 달라지는 등...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들에서 감탄을 자아낸 건 다름아닌 '설정'들이었다. 아무리봐도 이건 만화영화를 상영하기 위한 그림들이 아닌데, 만화영화 하나 만들겠다고 이렇게 복잡한 그림과 설명들을 한다고????

이 발견과 감탄은 입덕한 국민학생에게 지속적인 추적활동(?)을 하게 만든다. 당연히 이 작은 책에 모든 정보가 들어있을리는 없고, 건담만 하더라도 동일 출판사에서 또다른 책들이, 다른 출판사에서도 또다른 책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것들을 다 섭렵해야 정보의 합집합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기를 쓰고 관련된 책들을 찾아다녔다. 다이나믹 외에도 딱따구리 문고를 포함한 다수의 출판사가 건담 관련 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 그 합집합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돈이 들었지...

사실 생각해보면 퍼스트 건담을 정주행한 건 이로부터 약 10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아마 90년대 중반 이후 속도 안나오는 두루넷 동축케이블 인터넷으로 신비로 자료실에서 끊어지는 다운로드를 밤을 새가며 다시 부활시키며 다운받은 저해상도 파일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국민학교 시절 이런 미니백과로 마구 상상하던 것처럼 열광적이었던 건 아닌 거 같다. 역시 애정의 대상은 상상으로 열망하던 때가 제일 매력이 넘칠 때였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