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국민학교 입학 이후 처음 썼던 보온도시락이다. 물론 사진은 어디서 퍼온 사진이다. 검은색 플라스틱 외관에 내부도 베이지 플라스틱으로 구성, 아마도 그 사이에는 스티로폼으로 보온처리를 했을 것이다. 맨 아래에 플라스틱 국통이 들어가고 그 위에는 스텐레스 밥통, 그 옆의 홈에는 반투명 플라스틱 수통이 들어간 뒤, 그 위에 반찬통이 놓여지는 구조이다. 포크 겸 숟가락이 반찬통 뚜껑에 끼워진다. 스티로폼으로 처리한 도시락의 보온성능이 구린 건 둘째치고 각 용기의 밀봉처리가 엉성한 게 더 문제였다. 밥통이야 밀봉에 이슈가 없지만 문제는 가장 아래에 놓여진 국통. 별도의 고무패킹 같은 처리없이 그냥 나사산으로 구성된 본체+뚜껑 결합 방식이었는데 진짜 하루도 국이 안새는 경우가 없었다. 아마도 가장 아래에 놓여진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항상 도시락을 열어보면 가장 아래 국통은 넘친 국물로 흥건한 경우가 100%였다. 반찬통 역시 밀봉처리가 어느정도 탄력이 있는 뚜껑이 본체와 밀착되는 구조였는데, 조금만 냄새가 나는 반찬, 대표적으로 김치같은 반찬이면 무조건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이염이 잘되는 성질의 플라스틱을 써서 대충 한두달만 쓰면 본체건 뚜껑이건 뻘건 양념색으로 물드는 건 기본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저 도시락의 밀봉 문제는 제품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당시 우리들의 행동패턴도 문제였을 것이다. 신발주머니와 도시락은 무슨 철퇴인 것 마냥 휘두르고 다녔고, 타격용(?) 목적이 아니더라도 공중에 휘휘 돌리며 걷는 애들도 많았으니까... 아이들의 행동에는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무료하기만한 일상에 뭐라도 양념을 치는 행위였으니까... 나는 이 도시락을 엄마가 사준 지 얼마되지 않아 분실한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교실에 뭔가 놔두고 왔고, 교실에 돌아가기 전에 이 도시락을 교사 바깥에 있는 쓰레기통 위에 얹어놓고 다녀왔는데, 다녀오니 없어져 있었다. 엄마는 도시락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크게 책망하지 않았다. 사실 이건 정확하게 혼이 났다는 기억이 없기 때문인데, 어른이 된 뒤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시에 겨울이었어도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정확하게 얘기하면 그걸 살 형편이 안되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국민학생이 내용물을 다 먹은 도시락 따위를 훔쳐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장소가 학교이었으니만큼 가져간 이도 아마 비슷한 연배의 학생이었을 것이다. 보온도시락이 가지고 싶었겠지. 생각해보면 어려서 누가 보온도시락에 밥을 먹건 차가운 양은도시락에 밥을 먹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작 차가운 양은도시락에 차가운 밥을 먹던 친구는 저 국물 질질 새는 보온도시락도 엄청나게 부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저 보온도시락을 집에 가져가면 그 집의 부모님들은 어땠을지도 궁금하다. 국민학교 저학년의 8살짜리가 어디서 주워온 보온도시락...그걸 보는 부모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저 도시락을 깨끗이 씻어 내일부터 따뜻한 밥을 싸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걸 주워왔느냐, 혹은 훔쳐왔느냐고 애를 나무래야 하는 것인가... 엄마가 그렇게 혼내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상상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한동안 양은 도시락에 밥을 싸가다가 얼마 후 엄마가 전체가 스텐레스로 된 '메리노 보온도시락'이라는 걸로 도시락을 바꿔주셨다. 근데 이것도 하교길 오락실의 오락기 위에 올려두었다가 놔두고 오는 바람에 또다시 분실했다. 이번엔 제대로 혼이 났다...ㅋㅋ